주변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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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곶
동해안에서 맨 먼저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영일만의 호미곶보다 1분 빠르게, 강릉의 정동진보다도 5분 빨리 해돋이가 시작된다. 주위에 있는 울산 지역의 진하해수욕장, 서생포 왜성과 함께 새로운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간절곶등대는 바다를 바라보고 우뚝 서 있으며 흰색이다. 등대 앞은 솔 숲인데, 울창하지는 않지만 꼬불꼬불한 모양이 정겹다.
울산해양박물관
6대륙 바다의 생물자원을 한 곳에 모아놓은 세계교류의 역할공간. 울산해양박물관은울산 최초 사립기관이며, 지난 46년간 전세계 70개국에서 수집한 세계 최대 수준의 산호 패류를 상설전시하며, 매년새로운 이색특별전을 준비하여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바다자원과 환경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하여 바다의 소중함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생포왜성
조선시대 서생포지역은 경상도의 경주, 안동, 문경 방면으로 진군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 강과 바다를 접하고 있어 경상좌수영 휘하의 서생포만호진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서생포왜성(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 8호)은 임진왜란 때 서생포진성이 함락된 후 그 인근에 일본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10만 명을 동원하여 선조 25년(1592년) 7월부터 선조 26(1593)년에 걸쳐 완성한 성이다. 선조 27년(1594년)에서 선조 30년(1597년) 사이에는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이곳에서 카토 기요마사와 담판을 벌였던 곳이다. 이때, 일본군의 무리한 요구로 협상이 결렬되어 정유재란이 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창옹기종기시장
남창옹기종기시장이 있는 울주군 온양면 남창리에는 조선시대에 곡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그 창고에 울산부의 남쪽에 있다는 의미의 남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창리에 장이 개설된 것은 바닷가와 면한 서생면에서 생산된 해산물과 내륙의 곡식과 임산물이 만나는 중간 지점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시장이 개설되었다.
외고산 옹기마을
1957년 허덕만 씨가 이주하여 옹기를 굽기 시작하면서부터 옹기촌이 형성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증가된 옹기수요로 인해 옹기기술을 배우려는 이들이 모여들어 급속도로 성장한 마을이다. 1960~1970년대에는 약 350명의 장인과 도공들이 거주했고, 당시 마을에서 생산한 옹기는 서울뿐 아니라 미국·일본에까지 수출되었다. 2008년 현재 128가구 중 40여 가구가 옹기업에 종사하며, 전국 옹기 생산량의 50% 이상을 제작한다. 울산광역시가 전통옹기체험마을로 지정하였다. 마을에는 옹기회관·옹기전시관·상설판매장·체험실습장 등이 있다.
간절곶
동해안에서 맨 먼저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영일만의 호미곶보다 1분 빠르게, 강릉의 정동진보다도 5분 빨리 해돋이가 시작된다. 주위에 있는 울산 지역의 진하해수욕장, 서생포 왜성과 함께 새로운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간절곶등대는 바다를 바라보고 우뚝 서 있으며 흰색이다. 등대 앞은 솔 숲인데, 울창하지는 않지만 꼬불꼬불한 모양이 정겹다.
울산해양박물관
6대륙 바다의 생물자원을 한 곳에 모아놓은 세계교류의 역할공간. 울산해양박물관은울산 최초 사립기관이며, 지난 46년간 전세계 70개국에서 수집한 세계 최대 수준의 산호 패류를 상설전시하며, 매년새로운 이색특별전을 준비하여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바다자원과 환경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하여 바다의 소중함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생포왜성
조선시대 서생포지역은 경상도의 경주, 안동, 문경 방면으로 진군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 강과 바다를 접하고 있어 경상좌수영 휘하의 서생포만호진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서생포왜성(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 8호)은 임진왜란 때 서생포진성이 함락된 후 그 인근에 일본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10만 명을 동원하여 선조 25년(1592년) 7월부터 선조 26(1593)년에 걸쳐 완성한 성이다. 선조 27년(1594년)에서 선조 30년(1597년) 사이에는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이곳에서 카토 기요마사와 담판을 벌였던 곳이다. 이때, 일본군의 무리한 요구로 협상이 결렬되어 정유재란이 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창옹기종기시장
남창옹기종기시장이 있는 울주군 온양면 남창리에는 조선시대에 곡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그 창고에 울산부의 남쪽에 있다는 의미의 남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창리에 장이 개설된 것은 바닷가와 면한 서생면에서 생산된 해산물과 내륙의 곡식과 임산물이 만나는 중간 지점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시장이 개설되었다.
외고산 옹기마을
1957년 허덕만 씨가 이주하여 옹기를 굽기 시작하면서부터 옹기촌이 형성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증가된 옹기수요로 인해 옹기기술을 배우려는 이들이 모여들어 급속도로 성장한 마을이다. 1960~1970년대에는 약 350명의 장인과 도공들이 거주했고, 당시 마을에서 생산한 옹기는 서울뿐 아니라 미국·일본에까지 수출되었다. 2008년 현재 128가구 중 40여 가구가 옹기업에 종사하며, 전국 옹기 생산량의 50% 이상을 제작한다. 울산광역시가 전통옹기체험마을로 지정하였다. 마을에는 옹기회관·옹기전시관·상설판매장·체험실습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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